실록 메트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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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용 판

표와 그림 대신 산문으로 읽는 1.0의 결과다. 수치는 모두 지표 면에 있고, 여기서는 무엇이 보였는지만 적는다. 고종·순종실록은 공공누리 제4유형(변경 금지·비상업)이라 건수 집계에만 넣고 본문 발췌는 싣지 않았다(공개 코딩 표에서도 그 기사의 제목·인용문은 비웠다).

핵심

실록의 관측 기록은 계량에 쓸 수 있을 만큼 정확하고, 빈도형 기록은 기록 관행을 탄다. 이 둘을 갈라 읽는 것이 이 사이트의 한 문장 요약이다.

얼마나 적었나

태조부터 순종까지 27대의 본실록은 기사 375,368건, 한자 4,744만 자다(고종·순종은 건수만 셌다). 재위 1년당 글자 수로 보면 인종실록이 205,623자로 가장 촘촘하고 헌종실록이 12,766자로 가장 성글다. 세종·성종·중종·선조·정조 등 11개 왕대가 10만 자를 넘고(재위 1~3년인 인종·예종·문종·단종도 여기에 든다) 숙종은 7만 자대이며, 정조 이후 급히 줄어든다. 국편이 「후기로 갈수록 기록이 빈약하다」고 적은 것이 이 수치다.

사론(史臣曰)은 성종실록에서 처음 2%를 넘고 중종·명종·선조에서 가장 많다가 정조실록부터 하나도 없다. 조선 전기의 사론을 손으로 센 차장섭의 표와 국편 태그 수는 왕대마다 수십 건 안에서 맞는다.

판본이 갈린 곳

선조수정실록은 원본의 기사 수로 7%, 글자 수로 10%다. 국편 해제의 「1/5」은 권수 인상이다. 수정본 기사가 있는 날의 60%는 원본에도 기사가 있다. 현종개수실록은 원본보다 기사가 13%, 글자가 34% 많다 — 개수는 삭감이 아니라 다시 쓰기였다. 광해군일기는 중초본에서 정초본으로 가며 기사가 15%, 글자가 18% 줄었고, 중초본 글자의 16%가 산삭 표시 안에 있다.

하늘은 맞았나

「日食」이 나오는 기사 332건을 읽어 유형을 나누니 셋 중 하나는 일식을 논의의 소재로 끌어온 상소·전교였고, 일곱 중 하나는 일식이 아니었다(「日食一升」은 하루 한 되를 먹는다는 뜻이다). 그날 일식이 있었다는 보고로 읽히는 84건 가운데 서울에서 실제로 보이는 계산 일식과 ±1일 안에 맞는 것은 65%,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난 일식과 맞는 것은 95%다. 맞지 않는 쪽의 대부분은 「地下日食」처럼 해가 진 뒤의 일식을 계산대로 적은 것이다. 거꾸로 서울에서 보였을 일식 185회 중 기사가 있는 것은 33%다.

금성이 낮에 보였다는 太白晝見 기록 2,937일은 더 뚜렷하다. 기록일의 주기를 찾으면 583.7일이 나오고, 이것은 금성의 회합주기 583.92일과 0.04% 차이다. 기록의 66%가 내합 앞뒤 90일에 몰리고 내합 당일 부근은 비어 있다. 적어도 이 유형의 기록에는 실제 관측의 신호가 남아 있다.

누가 벼슬을 했나

정승·판서·참판·대사헌·대사간·도승지·관찰사·대제학에 처음 오른 사람의 성관을 50년마다 모으면 상위 10개 성관의 점유율이 0.28에서 0.45로 오른다. 같은 기간 문과 급제자 집단의 집중은 그보다 작다. 두 집단은 구성이 달라 이 차이를 승진 단계의 효과로 단정하지는 않는다.

사형 기사는 사형이 아니다

사형 표현이 나오는 행형 기사는 세종 대에 가장 많지만, 표본을 읽으면 그 대부분이 형조가 율을 적용해 아뢴 판결 보고이고 집행이 확인되는 것은 20건 중 2건이다. 표본에서는 16세기 후반~18세기 전반 구간의 집행 확인율이 높지만, 구간당 20건이라 분포를 확정하지는 않는다. 유승희가 『일성록』에서 센 정조~철종의 사죄 2,853건 가운데 실록에서 확인되는 사건은 111건뿐이다. 실록은 형정 통계의 자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