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읽기
이 면의 차례
이 사이트의 표기는 몇 줄의 옛 문장에 기댄다. 이 면은 그 문장을 모두 한곳에 모았다. 인용마다 원문과 독음과 해석을 붙이고, 어느 책의 어느 대목인지 밝힌다.
문헌은 넷으로 나뉜다. 『훈민정음』 해례본(1446)은 새 글자를 반포하며 낸 한문 해설서다. 언해본은 해례본의 앞부분(예의)만 우리말로 옮긴 책인데, 옮기면서 중국 한자음을 적는 조항을 하나 더했다. 『사성통고』와 「번역노걸대박통사범례」는 중국어를 적으려고 만든 책의 규칙이고, 『동국정운』 서문과 『세종실록』은 같은 시대의 관찬 기록이다. 판 1은 이 넷을 한 제목 아래 세종의 방법으로 묶어 실었다. 판 2는 묶지 않는다. 인용 끝에 해례 · 언해 · 운서 · 실록을 따로 적는 이유다.
해석은 이 사이트가 직접 했다. 기존 국역을 옮기지 않았다. 원문 글자는 1946년 조선어학회 석판 영인(간송본 저본)을 따르고, 인터넷에서 쉽게 보는 위키문헌 전사본과 다른 글자는 각주와 5절에 적었다. 독음은 현대 한국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다. 언해본처럼 한글이 섞인 문장은 한자만 독음으로 바꾸고 옛한글은 그대로 두었다. 원문 일부를 빼고 인용한 자리는 「…」로 표시했다.
1. 『훈민정음』 해례본(1446)
해례본은 세종의 서문과 예의(例義), 신하들이 쓴 해례(제자해 · 초성해 · 중성해 · 종성해 · 합자해 · 용자례), 정인지의 서문으로 이루어진다. 「예의」라는 이름은 정인지 서문의 「略揭例義以示之」(약게예의이시지: 예와 뜻을 간략히 들어 보이셨다)에서 왔다. 예의는 글자마다 소리와 쓰는 법을 정한 본문이고, 해례는 그것을 풀이한 부분이다.
이 면이 저본으로 삼는 원간본은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나온 책으로, 간송미술관에 있다. 1997년 무렵에는 이 책이 유일한 원간본으로 알려져 있었다(이현희 1997: 241). 2008년 같은 판본의 다른 책(상주본)이 알려졌다. 서문 4장과 뒷부분 1장이 없고, 2012년 문화재청 발표 당시 소장자가 감춰 행방을 알 수 없었다(문화재청 2012). 간송본은 발굴 때 첫 두 장이 떨어져 나가 있었고, 그것을 기워 넣는 과정에서 글자와 권점에 실수가 생겼다(이현희 1997: 241). 세종 서문과 예의 앞부분을 읽을 때 이 점을 감안해야 한다.
1-1. 예의 — 연서 · 병서 · 부서 · 방점
예의는 초성 17자를 하나씩 들고 「어느 한자의 첫소리와 같다」고 소리를 정한다. 이 사이트가 다시 쓰는 글자 둘이 여기서 처음 나온다.
ㆆ,喉音,如挹字初彂聲。… ㅿ,半齒音,如穰字初彂聲。
ㆆ, 후음, 여읍자초발성. … ㅿ, 반치음, 여양자초발성.
ㆆ은 목소리이니 挹 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 … ㅿ은 반잇소리이니 穰 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
두 글자 모두 28자 안의 글자다. 우리말 밖의 소리를 적으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판 2가 ᅀ를 유성 치경 마찰음 z에 쓰는 것은 있는 글자에 새 소리를 맡기는 재배정이다. 「初彂聲」의 彂은 發의 이체자다.1
이어 예의는 글자를 어울러 쓰는 법을 한 문단에 몰아 적는다.
終聲復用初聲。ㅇ連書脣音之下則爲脣輕音。初聲合用則並書,終聲同。ㆍㅡㅗㅜㅛㅠ附書初聲之下,ㅣㅏㅓㅑㅕ附書於右。凡字必合而成音。
종성부용초성. ㅇ연서순음지하즉위순경음. 초성합용즉병서, 종성동. ㆍㅡㅗㅜㅛㅠ부서초성지하, ㅣㅏㅓㅑㅕ부서어우. 범자필합이성음.
끝소리는 첫소리 글자를 다시 쓴다. ㅇ을 입술소리 아래에 이어 쓰면 입술가벼운소리가 된다. 첫소리를 어울러 쓰려면 나란히 쓰고, 끝소리도 그렇게 한다. ㆍ ㅡ ㅗ ㅜ ㅛ ㅠ는 첫소리 아래에 붙여 쓰고, ㅣ ㅏ ㅓ ㅑ ㅕ는 오른쪽에 붙여 쓴다. 무릇 글자는 어울려야 소리를 이룬다.
세 조작이 이 문단에 있다. 연서(連書)는 ㅇ을 아래에 이어 쓰는 것이다. 예의는 그 대상을 입술소리(脣音)로 못 박았다. 그러니 ㅂ ㅍ ㅁ ㅃ 아래에 ㅇ을 단 ᄫ ᅗ ᄝ ᄬ까지가 예의가 직접 허락한 꼴이다. 해례 용자례에는 실제로 ᄫ이 쓰인 우리말이 있다. 사ᄫᅵ(蝦: 새우)와 드ᄫᅴ(瓠: 뒤웅박)다.
병서(並書)는 나란히 쓰는 것이다. 같은 글자를 겹치는 것(ㄲ ㄸ ㅃ)과 다른 글자를 잇대는 것(합자해 용례의 ᄯᅡ 地 · ᄧᅡᆨ 雙 · ᄢᅳᆷ 隙)을 예의는 따로 부르지 않고 둘 다 「並書」라 했다. 예의의 초성 목록에도 「並書,如虯字初彂聲」(병서, 여규자초발성: 나란히 쓰면 虯 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처럼 겹쓴 글자가 여섯 나온다. 이 사이트가 무기음 p t k를 ㅃ ㄸ ㄲ로, 떠는 r을 ᄙ로 적는 것은 모두 이 병서를 빌린 것이다. 다만 ㄹ을 겹친 ᄙ은 해례에 용례가 없다.
부서(附書)는 모음을 어디에 붙이느냐의 규칙이다. 둥근 것과 가로 그은 것은 아래에, 세로 그은 것은 오른쪽에 붙인다. 새 모음 합자를 만들 때 이 틀을 벗어나면 해례의 글자가 아니게 된다. 합자해가 이 틀의 예외를 한 번 인정하는데, 1-3에서 본다.
예의는 다음 문장으로 끝난다.
左加一點則去聲,二則上聲,無則平聲。入聲加點同而促急。
좌가일점즉거성, 이즉상성, 무즉평성. 입성가점동이촉급.
왼쪽에 점 하나를 더하면 거성, 둘이면 상성, 없으면 평성이다. 입성은 점을 더하는 것은 같으나 빠르다.
이것이 방점이다. 점의 개수가 소리의 높낮이 범주를 가른다. 입성은 높낮이가 아니라 음절이 막혀 짧게 끝나는 성질로 정해지므로, 점은 평·상·거성과 같은 방식으로 찍고 「빠르다」는 말만 덧붙였다.
1946 영인에서 예의는 「促急」에서 끝나고, 남은 칸은 비어 있으며, 다음 장이 「訓民正音解例 制字解」로 시작한다. 위키문헌 전사본에는 이 뒤에 괄호로 「(漢音齒聲有齒頭正齒之別…)」 조항이 붙어 있다. 이것은 전사한 편집자가 언해본에서 가져와 보충한 것이다. 해례본의 문장이 아니다. 이 조항은 2절에서 언해본으로 읽는다.
1-2. 제자해 — 전탁 · 순경음 · ㆍ
예의가 규칙을 주었다면 제자해는 이유를 댄다. 이 사이트에 닿는 대목은 셋이다.
全淸並書則爲全濁,以其全淸之聲凝則爲全濁也。唯喉音次淸爲全濁者,盖以ㆆ聲深不爲之凝,ㅎ比ㆆ聲淺,故凝而爲全濁也。
전청병서즉위전탁, 이기전청지성응즉위전탁야. 유후음차청위전탁자, 개이ㆆ성심불위지응, ㅎ비ㆆ성천, 고응이위전탁야.
전청을 나란히 쓰면 전탁이 된다. 전청의 소리가 엉기면 전탁이 되기 때문이다. 목소리만은 차청을 나란히 써서 전탁으로 삼는데, ㆆ은 소리가 깊어 엉기지 않고 ㅎ은 ㆆ보다 소리가 얕아 엉겨서 전탁이 되기 때문이다.
전청은 ㄱ ㄷ ㅂ ㅈ ㅅ ㆆ, 차청은 ㅋ ㅌ ㅍ ㅊ ㅎ, 전탁은 ㄲ ㄸ ㅃ ㅉ ㅆ ㆅ이다(같은 제자해). 각자병서의 이유를 「凝」(응: 엉긴다) 한 글자로 설명했다. 무엇이 어떻게 엉긴다는 것인지 현대 음성학의 말로 옮기면 해석이 갈린다. 이 면은 「엉긴다」로 직역하고 해석을 유보한다. 15세기 전탁 글자가 실제로 어떤 소리였는지도 이 문장만으로는 정해지지 않는다. 판 2가 ᄙ을 떠는 r에 쓰는 것은 이 「엉김」을 ㄹ에 유추한 재해석이다. 원전이 그렇게 쓴 적은 없다.
ㅇ連書脣音之下,則爲脣輕音者,以輕音脣乍合而喉聲多也。
ㅇ연서순음지하, 즉위순경음자, 이경음순사합이후성다야.
ㅇ을 입술소리 아래 이어 쓰면 입술가벼운소리가 되는 것은, 가벼운 소리는 입술을 잠깐 다물고 목소리가 많기 때문이다.
순경음의 조음 묘사는 이 한 문장이 전부다. 「脣乍合」(순사합: 입술이 잠깐 다물린다)과 「喉聲多」(후성다: 목소리가 많다) 두 가지만 말한다. 입술 둘이 닿는지 윗니와 아랫입술이 닿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판 2는 v와 β를 ᄫ로, f를 ᅗ로 적는데, 이것은 예의의 연서 조작과 이 묘사를 빌린 것이다. 15세기 문헌이 중국어의 순경음을 적은 방식은 달랐다. 『홍무정운역훈』(1455)의 31자모표는 순경음 非 · 奉 · 微 셋을 ᄫ · ᄬ · ᄝ으로 적었다(이돈주 2002: 39). ᅗ을 중국어 전사에 쓴 예는 이 면이 읽은 문헌에서 찾지 못했다.
ㆍ舌縮而聲深,天開於子也。形之圓,象乎天也。
ㆍ설축이성심, 천개어자야. 형지원, 상호천야.
ㆍ는 혀가 오그라들고 소리가 깊다. 하늘이 자시(子時)에 열린 것이다. 모양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ㅡ는 설소축이성불심불천(舌小縮而聲不深不淺: 혀가 조금 오그라들고 소리가 깊지도 얕지도 않다), ㅣ는 설불축이성천(舌不縮而聲淺: 혀가 오그라들지 않고 소리가 얕다)이다. 세 모음을 혀의 오그라듦과 소리의 깊이라는 두 눈금 위에 놓았다. 정확한 모음 값을 정한 문장은 아니다. 판 1은 ㆍ를 러시아어의 강세 없는 [ə]에 썼다. 판 2는 그것을 빼고 ㅓ로 적는다. ㆍ의 15세기 값은 재구의 문제이고, 이 묘사만으로는 ㆍ를 [ə]에 맞출 근거가 되지 않는다.
1-3. 합자해 — 반설경음 · 起ㅣ聲 · 방점
해례가 표준 우리말에 없는 소리를 적는 길을 연 대목은 합자해 끝에 몰려 있다. 둘이다.
半舌有輕重二音。然韻書字母唯一,且國語雖不分輕重,皆得成音。若欲備用,則依脣輕例,ㅇ連書ㄹ下,爲半舌輕音,舌乍附上腭。
반설유경중이음. 연운서자모유일, 차국어수불분경중, 개득성음. 약욕비용, 즉의순경례, ㅇ연서ㄹ하, 위반설경음, 설사부상악.
반혓소리에는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두 소리가 있다. 그러나 운서의 자모는 하나뿐이고, 우리말도 가볍고 무거움을 가르지 않아도 다 소리를 이룬다. 갖추어 쓰고자 한다면 입술가벼운소리의 예를 따라 ㅇ을 ㄹ 아래 이어 써서 반설경음으로 삼는다. 혀가 위턱에 잠깐 붙는다.
예의는 연서를 입술소리에 한정했다. 이 조항은 그 연서를 「예에 따라(依…例)」 ㄹ에까지 넓힌다. 결과 글자는 ᄛ이다. 예의가 정한 조작의 범위를 해례가 스스로 넓힌 자리다. 같은 합자해에는 ㅇ을 겹쳐 쓴 고유어 용례도 있다. 「괴여〮爲我愛人而괴ᅇᅧ〮爲人愛我」(괴여 위아애인 이 괴ᅇᅧ 위인애아: 괴여는 내가 남을 사랑함이고 괴ᅇᅧ는 남이 나를 사랑함이다).
조건이 붙어 있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若欲備用」(약욕비용: 갖추어 쓰고자 한다면)은 선택이다. 그 앞 문장은 우리말이 이 구별 없이도 소리를 이룬다고 먼저 말한다. 구별의 출처로 든 것은 운서, 곧 중국 음운학의 자모 체계다. 이 조항이 외국 소리를 염두에 두었다고 원문이 말하지는 않는다. 이 조항을 외국어 표기의 근거로 넓혀 읽을 수 있는지를 직접 다룬 연구는 이 사이트가 근거로 쓰는 문헌 안에서 찾지 못했다(반대 근거 찾지 못함, 검색 범위: 이 사이트 참고문헌 가운데 A 등급 34편).
「舌乍附上腭」의 上腭(상악)은 위턱, 곧 입천장 쪽을 가리킨다. 그것이 윗잇몸인지 그보다 뒤인지는 이 문장만으로 정하지 않는다. 같은 말이 제자해의 ㄴ 설명 「象舌附上腭之形」(상설부상악지형: 혀가 위턱에 붙는 모양을 본떴다)에도 나온다.
판 1은 스페인어 탄설음 ɾ를 ㄹ로 적으면서 이 조항을 근거처럼 끌어왔다. 그러나 해례가 「혀가 잠깐 붙는다」는 설명을 단 글자는 ㄹ가 아니라 ᄛ이다. 판 2는 ɾ를 그대로 ㄹ로 적되 근거를 바꾸었다. 현대 한국어에서 모음 사이 ㄹ이 이미 그 소리이기 때문이다. 해례는 이 소리를 ᄛ로 적을 길을 열어 두었다는 사실만 함께 적는다.
ㆍㅡ起ㅣ聲,於國語無用。兒童之言,邊野之語,或有之,當合二字而用,如ᄀᆝᄀᆜ之類。其先縱後橫,與他不同。
ㆍㅡ기ㅣ성, 어국어무용. 아동지언, 변야지어, 혹유지, 당합이자이용, 여ᄀᆝᄀᆜ지류. 기선종후횡, 여타부동.
ㅣ에서 일어나는 ㆍ와 ㅡ의 소리는 나라말에 쓰이지 않는다. 아이들 말이나 변두리 말에 간혹 있으니, 두 글자를 합해 써야 한다. ᄀᆝ ᄀᆜ 같은 것이다. 세로를 먼저 쓰고 가로를 나중에 쓰니 다른 글자와 다르다.
표준말에 없는 소리를 위해 새 모음 합자 ᆝ ᆜ를 허락한 조항이다. 대상은 아이들 말과 변두리 말, 곧 우리말의 주변부다. 외국어가 아니다. 「先縱後橫」은 1-1의 부서 규칙(ㅣ는 오른쪽, ㅡ는 아래)을 따르면 ㅣ가 뒤에 와야 하는데 이 글자만은 순서가 반대라는 뜻이다. 판 2는 러시아어에서 연자음 뒤 강세 없는 모음을 ㅕ로 적는다. ᆝ는 해설에서 후보로만 든다.
방점은 합자해가 다시 다룬다. 예의보다 자세하다.
凡字之左,加一點爲去聲,二點爲上聲,無點爲平聲,而文之入聲,與去聲相似。諺之入聲無定,或似平聲,如긷爲柱,녑爲脅。或似上聲,如낟〯爲穀,깁〯爲繒。或似去聲,如몯〮爲釘,입〮爲口之類。其加點則與平上去同。
범자지좌, 가일점위거성, 이점위상성, 무점위평성, 이문지입성, 여거성상사. 언지입성무정, 혹사평성, 여긷위주, 녑위협. 혹사상성, 여낟위곡, 깁위증. 혹사거성, 여몯위정, 입위구지류. 기가점즉여평상거동.
무릇 글자의 왼쪽에 점 하나를 더하면 거성, 둘이면 상성, 없으면 평성이다. 한자음의 입성은 거성과 비슷하다. 우리말의 입성은 정해져 있지 않아서, 평성과 비슷한 것(긷 기둥, 녑 옆구리)도 있고, 상성과 비슷한 것(낟 곡식, 깁 비단)도 있고, 거성과 비슷한 것(몯 못, 입 입)도 있다. 점을 더하는 법은 평·상·거성과 같다.
한자음(文)과 우리말(諺)을 갈라 규칙을 달리했다. 한자음 입성에는 거성처럼 점 하나를 찍는다. 우리말 입성은 실제 높낮이에 따라 점을 찍는다. 점이 음절의 막힘이 아니라 높낮이를 적는다는 것이 여기서 분명해진다. 같은 절은 네 성조의 느낌을 평성안이화(平聲安而和: 평성은 편안하고 부드럽다), 상성화이거(上聲和而擧: 상성은 부드럽다가 들린다), 거성거이장(去聲擧而壯: 거성은 들리고 굳세다), 입성촉이색(入聲促而塞: 입성은 빠르고 막힌다)으로 적었다. 3-1의 『사성통고』 범례가 중국 한자음의 입성에 점 하나를 준 것은 「文之入聲,與去聲相似」와 같은 처리다.
1-4. 종성해 — 「當用於諺」
종성해는 끝소리에 쓰는 글자를 다룬다. 「ㄱㆁㄷㄴㅂㅁㅅㄹ八字可足用也」(ㄱㆁㄷㄴㅂㅁㅅㄹ팔자가족용야: 여덟 글자면 넉넉히 쓴다)로 유명한 절이다. 그 끝에 ㄹ에 관한 조항이 있다.
且半舌之ㄹ,當用於諺,而不可用於文。如入聲之彆字,終聲當用ㄷ,而俗習讀爲ㄹ,盖ㄷ變而爲輕也。若用ㄹ爲彆之終,則其聲舒緩,不爲入也。
차반설지ㄹ, 당용어언, 이불가용어문. 여입성지별자, 종성당용ㄷ, 이속습독위ㄹ, 개ㄷ변이위경야. 약용ㄹ위별지종, 즉기성서완, 불위입야.
또 반혓소리 ㄹ은 우리말에 써야 하고 한자음에는 쓸 수 없다. 입성인 彆 자는 끝소리에 ㄷ을 써야 하는데, 세속의 습관으로 ㄹ로 읽는다. ㄷ이 변해 가벼워진 것이다. ㄹ을 彆의 끝소리로 쓰면 소리가 늘어져 입성이 되지 않는다.
같은 절의 노래(訣)는 이것을 두 줄로 줄였다. 려의어언불의문(閭宜於諺不宜文: ㄹ은 우리말에 맞고 한자음에 맞지 않다), 두경위려시속습(斗輕爲閭是俗習: ㄷ이 가벼워져 ㄹ이 된 것은 세속의 습관이다).
「當用於諺」은 끝소리 ㄹ 규정이 우리말에 쓰이는 규칙이라는 뜻이다. 해례는 같은 글자라도 우리말(諺)과 한자음(文)에서 쓰임을 달리했다. 1-3의 방점 조항도 그랬다. 한 문자 안에서 대상 언어에 따라 규칙을 나누는 발상은 이 사이트가 언어마다 대응을 따로 두는 것과 닮았다. 그러나 해례가 나눈 것은 우리말과 우리 한자음 둘이다. 외국어까지 나누어 생각한 흔적은 없다.
이 조항은 실제 정책으로 이어졌다. 신숙주는 『동국정운』 서문에서 질(質)·물(勿) 운의 끝소리는 ㄷ이어야 하는데 세속이 ㄹ을 써서 소리가 늘어지고 입성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그래서 ㄹ 뒤에 ㆆ을 덧붙여 바로잡았다고 했다.2 3-3에서 같은 서문의 다른 대목을 읽는다.
1-5. 정인지 서 — 「雖風聲鶴唳」와 그 한계 문장
정인지의 서문은 해례본 맨 끝에 있고, 날짜는 「正統十一年九月上澣」(정통십일년구월상한: 1446년 9월 상순)이다. 한글이 무엇이든 적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인용되는 문장이 여기 있다. 그 문장을 읽기 전에 서문의 앞부분부터 본다.
蓋外國之語,有其聲而無其字。假中國文字以通其用,是猶枘鑿之鉏鋙也,豈能達而無礙乎。要皆各隨所處而安,不可强之使同也。
개외국지어, 유기성이무기자. 가중국문자이통기용, 시유예조지서어야, 기능달이무애호. 요개각수소처이안, 불가강지사동야.
대개 중국 밖 나라의 말은 소리는 있으나 글자가 없다. 중국 글자를 빌려 쓰니, 네모난 장부를 둥근 구멍에 끼우는 것처럼 어긋난다. 어찌 막힘없이 통하겠는가. 요컨대 저마다 처한 곳에 따라 편하게 할 일이지 억지로 같게 할 수 없다.
여기서 「外國」은 중국에서 본 바깥 나라다. 바로 다음 문장이 「吾東方禮樂文章,侔擬華夏。但方言之語,不與之同」(오동방예악문장, 모의화하. 단방언지어, 불여지동: 우리 동방은 예악과 문장이 중국에 견줄 만하나, 다만 말이 같지 않다)이다. 서문이 말하는 어긋남은 조선이 남의 말을 적는 어려움이 아니라 조선말을 한자로 적는 어려움이다. 「각자 처한 곳에 따라」라는 말도 말마다 맞는 글자가 따로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다음에 세종의 새 글자를 소개한다.
象形而字倣古篆,因聲而音叶七調,三極之義、二氣之妙,莫不該括。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簡而要,精而通,故智者不終朝而會,愚者可浹旬而學。以是解書,可以知其義。以是聽訟,可以得其情。字韻則淸濁之能辨,樂歌則律呂之克諧。無所用而不備,無所往而不達。雖風聲鶴唳,雞鳴狗吠,皆可得而書矣。
상형이자방고전, 인성이음협칠조, 삼극지의, 이기지묘, 막불해괄. 이이십팔자이전환무궁. 간이요, 정이통, 고지자부종조이회, 우자가협순이학. 이시해서, 가이지기의. 이시청송, 가이득기정. 자운즉청탁지능변, 악가즉율려지극해. 무소용이불비, 무소왕이부달. 수풍성학려, 계명구폐, 개가득이서의.
꼴을 본떴으되 글자는 옛 전서를 닮았고, 소리를 따랐으되 음은 일곱 가락에 맞는다. 하늘·땅·사람의 뜻과 음양의 묘함을 다 담지 않은 것이 없다. 스물여덟 자로 바꾸고 굴려 끝이 없다. 간단하면서 요긴하고 정밀하면서 두루 통한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이는 아침나절이 다 가기 전에 깨치고, 어리석은 이도 열흘이면 배운다. 이것으로 글을 풀면 뜻을 알 수 있고, 송사를 들으면 사정을 알 수 있다. 한자음은 맑고 흐림을 가를 수 있고, 노래는 율려가 고르게 맞는다. 쓰지 못할 데가 없고 가서 통하지 않을 데가 없다. 바람 소리, 학 울음, 닭 울음, 개 짖는 소리라도 모두 적을 수 있다.
마지막 문장은 앞 문장들 위에 서 있다. 그 전제는 「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이이십팔자이전환무궁: 스물여덟 자로 바꾸고 굴려 끝이 없다)이다. 글자를 더 만들지 않고 28자의 조합만으로 끝없이 적는다는 말이다. 쓰임새로 든 것도 글 풀기, 송사, 한자음의 청탁, 노래다. 모두 조선 안의 일이다. 바람 소리와 닭 울음은 그 끝에 붙은 비유다. 소리를 실제로 적어 보인 예는 서문에 없다.
이 문장은 만든 사람들의 포부로 읽는 것이 맞다. 같은 서문이 끝에서 「若其淵源精義之妙,則非臣等之所能發揮也」(약기연원정의지묘, 즉비신등지소능발휘야: 그 근원과 깊은 뜻의 묘함은 신들이 밝힐 수 있는 바가 아니다)라고 물러선 것도 함께 볼 일이다. 실제 역사는 28자의 조합에서 멈추지 않았다. 중국 한자음을 적어야 하자 언해본과 『홍무정운역훈』은 치두·정치 글자 열 자를 새로 만들었다(2절). 「무엇이든 적는다」는 선언보다 필요할 때마다 글자와 규칙을 덧붙인 기록이 이 사이트가 기대는 근거다.3
2. 『훈민정음』 언해본 — 치두 · 정치 조항
언해본은 해례본의 예의 부분만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 『월인석보』(1459) 권1·2 맨 앞의 「世宗御製訓民正音」이 그것이다. 이현희(1997: 241)는 이 언해본을 「예의에 중국음[漢音]의 치두음과 정치음에 대한 내용을 추가하여 언해한 것」이라 하고, 『석보상절』(1447)에 이미 치두·정치 표기가 쓰였다고 적었다. 한문 구절마다 우리말 토를 달고, 어려운 글자를 풀이하고, 이어서 우리말 번역을 붙이는 체재다.
그 추가 조항은 예의의 방점 문장 바로 뒤에 온다. 아래 인용은 한자 옆에 작은 글자로 단 동국정운식 한자음과 방점을 뺐고, 글자 풀이 부분은 「…」로 줄였다. 한자 뒤에 본문 크기로 따로 찍힌 ㄱ · ᅙ · ㅂ(穰ㄱ字 · 彌ᅙ字 · 侵ㅂ字)은 한자음이 아니므로 남겼다.
漢音齒聲은 有齒頭正齒之别ᄒᆞ니 … 中國 소리예 니쏘리ᄂᆞᆫ 齒頭와 正齒왜 ᄀᆞᆯᄒᆡ요미 잇ᄂᆞ니
ᅎᅔᅏᄼᄽ字ᄂᆞᆫ 用於齒頭ᄒᆞ고 이 소리ᄂᆞᆫ 우리나랏 소리예셔 열ᄫᅳ니 혓그티 웃닛머리예 다ᄔᆞ니라
ᅐᅕᅑᄾᄿ字ᄂᆞᆫ 用於正齒ᄒᆞᄂᆞ니 이 소리ᄂᆞᆫ 우리나랏 소리예셔 두터ᄫᅳ니 혓그티 아랫닛므유메 다ᄔᆞ니라
牙舌脣喉之字ᄂᆞᆫ 通用於漢音ᄒᆞᄂᆞ니라
한음치성은 유치두정치지별ᄒᆞ니 … 중국 소리예 니쏘리ᄂᆞᆫ 치두와 정치왜 ᄀᆞᆯᄒᆡ요미 잇ᄂᆞ니 / ᅎᅔᅏᄼᄽ자ᄂᆞᆫ 용어치두ᄒᆞ고 이 소리ᄂᆞᆫ 우리나랏 소리예셔 열ᄫᅳ니 혓그티 웃닛머리예 다ᄔᆞ니라 / ᅐᅕᅑᄾᄿ자ᄂᆞᆫ 용어정치ᄒᆞᄂᆞ니 이 소리ᄂᆞᆫ 우리나랏 소리예셔 두터ᄫᅳ니 혓그티 아랫닛므유메 다ᄔᆞ니라 / 아설순후지자ᄂᆞᆫ 통용어한음ᄒᆞᄂᆞ니라
중국 소리의 잇소리에는 치두와 정치의 구별이 있다. ᅎ ᅔ ᅏ ᄼ ᄽ 글자는 치두에 쓴다. 이 소리는 우리나라 소리보다 얇으니, 혀끝이 윗니 머리에 닿는다. ᅐ ᅕ ᅑ ᄾ ᄿ 글자는 정치에 쓴다. 이 소리는 우리나라 소리보다 두터우니, 혀끝이 아랫잇몸에 닿는다. 어금닛소리 · 혓소리 · 입술소리 · 목소리 글자는 중국 소리에 두루 쓴다.
이 조항에 대해 분명히 해 둘 것이 셋이다.
첫째, 이 조항은 해례에 없고 언해본에만 있다. 1946 영인의 해례 예의는 1-1에서 본 대로 「促急」에서 끝난다. 해례 본문 전체에서 「齒頭」 「正齒」라는 말은 위키문헌 전사본이 괄호로 보충한 그 한 곳에만 나온다. 조항 첫머리가 「漢音」, 곧 중국 소리라고 대상을 스스로 밝힌다. 우리말이나 우리 한자음을 적는 규칙이 아니다.
둘째, 글자 꼴은 전사본에서 읽을 수 없다. 위키문헌 언해 전사본은 치두 다섯 자와 정치 다섯 자를 둘 다 현대 자모 ㅈ ㅊ ㅉ ㅅ ㅆ으로 적어 구별을 잃었다. 위 인용의 꼴은 두 가지로 되살렸다. 하나는 『홍무정운역훈』 31자모표다. 치두 精 · 淸 · 從 · 心 · 邪가 ᅎ · ᅔ · ᅏ · ᄼ · ᄽ, 정치 照 · 穿 · 牀 · 審 · 禪이 ᅐ · ᅕ · ᅑ · ᄾ · ᄿ로 적혀 있다(이돈주 2002: 39). 다른 하나는 유니코드 이름이다. 치두 다섯 자는 HANGUL CHOSEONG CHITUEUM…(U+113C · U+113D · U+114E · U+114F · U+1154), 정치 다섯 자는 HANGUL CHOSEONG CEONGCHIEUM…(U+113E · U+113F · U+1150 · U+1151 · U+1155)으로 부호화되어 있다. 1568년에 다시 찍은 『월인석보』 권1 권두 언해본의 사진과 대조하면, 치두 다섯 자는 왼쪽 획이 길고 정치 다섯 자는 오른쪽 획이 길어 위 복원과 같다. 1459년 초간본의 사진과는 대조하지 못했다(확인 중).
셋째, 묘사가 말하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우리 잇소리와 견준 청각 인상(얇다 · 두텁다)과 혀끝이 닿는 자리(윗니 머리 · 아랫잇몸)다. 마찰음인지 파찰음인지, 혀가 이 사이로 나오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다섯 글자를 한 문장으로 묶었으니 이 묘사는 ᄼ 한 자가 아니라 계열 전체의 자리를 정한 것이다.
이 열 자는 해례의 연서 · 병서 · 가획 어느 조작으로도 만들 수 없다. ㅅ ㅈ ㅊ의 한쪽 획을 길게 늘인 꼴이다. 이돈주(2002: 39)는 이것을 중국어의 치두와 정치를 가르려고 「두 종류의 한글 글자(ᄼ:ᄾ 등)를 새로 창안」한 것이라 했다. 판 2는 이 열 자를 해례층이 아니라 언해 · 운서층 글자로 표시한다. ts 계열을 ᅎ · ᅔ · ᅏ으로, 중국어 s를 ᄼ으로, ʂ와 ʃ를 ᄾ으로, ʐ와 ʒ를 ᄿ으로 적는다. 판 1에서는 스페인어 θ도 ᄼ이었다. 판 2는 θ를 ᅊ(ㅇ과 ㅌ을 나란히 쓴 꼴)으로 바꾸었다.
3. 운서 · 역학서 범례
해례와 언해 다음 층은 중국어를 적으려고 만든 책들이다. 운서인 『홍무정운역훈』(1455)과 그것을 자모 순서로 다시 엮은 『사성통고』(심소희 2013: 19), 그리고 16세기 초 최세진이 『노걸대』 · 『박통사』의 한자마다 한글로 중국어 음을 단 번역본이다. 이 책들의 규칙은 범례에 적혀 있다.
이 면은 두 범례의 원본을 보지 못했다. 『사성통고』는 전하지 않고, 최세진의 『사성통해』(1517) 권말에 실린 「사성통고범례」로 내용 일부를 알 수 있을 뿐이다(심소희 2013: 19). 「번역노걸대박통사범례」도 『사성통해』에 붙어 전한다(강식진 1999: 36). 아래 인용은 모두 연구자가 논문에 옮긴 것을 다시 옮긴 2차 인용이다. 인용 끝에 그 논문과 쪽을 적었다.
해례와 언해가 중국어의 성조와 끝소리를 직접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이 층이 필요하다. 이 사이트가 중국어 성조를 방점으로 적는 것, 그리고 다음 판에서 성문 폐쇄를 ᅙ으로 적는 안을 검토하는 것은 이 층의 선례에 기댄다.
3-1. 『사성통고』 범례 — 방점 · ㆆ 조
凡字音, 四聲以點別之, 平聲則無點, 上聲則二點, 去聲則一點, 入聲則亦一点.
범자음, 사성이점별지, 평성즉무점, 상성즉이점, 거성즉일점, 입성즉역일점.
무릇 글자음의 네 성조는 점으로 가른다. 평성은 점이 없고, 상성은 점 둘, 거성은 점 하나이며, 입성도 점 하나다.
해례 예의의 0 · 1 · 2점을 중국 한자음에 그대로 옮긴 규칙이다. 입성에 점 하나를 준 것은 합자해의 「文之入聲,與去聲相似」와 같다. 점은 성조의 이름, 곧 범주에 붙는다. 실제 높낮이를 잰 것이 아니다. 심소희(2013: 35)는 『홍무정운역훈』에서 정음과 속음의 성조가 서로 다르게 적힌 예가 하나도 없었고, 당시 북방음에서 평성이 둘로 갈라진 변화도 속음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且今俗音雖不用終聲, 而不至如平上去之緩弛, 故俗音終聲, 於諸韻用喉音全淸ㆆ, 藥韻用脣輕全淸ㅸ以別之.
차금속음수불용종성, 이부지여평상거지완이, 고속음종성, 어제운용후음전청ㆆ, 약운용순경전청ㅸ이별지.
또 지금 속음은 끝소리를 쓰지 않지만 평·상·거성처럼 늘어지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그래서 속음의 끝소리로 여러 운에는 목소리 전청 ㆆ을 쓰고, 藥 운에는 입술가벼운소리 전청 ㅸ을 써서 구별한다.
같은 조는 앞에서 정음의 입성 끝소리를 ㄱ ㄷ ㅂ으로 적되 너무 분명히 소리 내지 말고 「微用而急終之」(미용이급종지: 살짝 쓰고 급히 끝낸다) 하라고 했다. 속음, 곧 당시 북방의 실제 발음에서는 그 끝소리가 이미 사라졌다. 그래도 소리가 짧게 끊기는 성질은 남아 있었으므로 그것을 ㆆ으로 표시했다는 것이다. 해례의 28자 가운데 하나인 ㆆ에 「짧게 끊긴다」는 새 소임을 맡긴 셈이다.4 심소희가 인용한 원문은 구두점 없이 실렸고, 위 쉼표는 이 면이 끊은 것이다.
3-2. 「번역노걸대박통사범례」 — 방점조 두 대목
최세진의 범례는 국음 · 한음 · 언음 · 방점 등 8개 조로 되어 있고, 모두 발음에 관한 것이다(강식진 1999: 36). 방점조는 중국어 성조에 점을 매기는 법을 우리말 성조에 견주어 정했다.
…其呼與國音去聲相似,故反譯則亦一點,…其呼勢同國音平聲之呼,故反譯則無點,…其聲勢同國音上聲之呼,故反譯則亦二點…
…기호여국음거성상사, 고반역즉역일점, …기호세동국음평성지호, 고반역즉무점, …기성세동국음상성지호, 고반역즉역이점…
…그 소리가 우리 음의 거성과 비슷하므로 옮겨 적을 때에도 점 하나를 찍고, …그 소리의 기세가 우리 음 평성의 소리와 같으므로 옮겨 적을 때 점을 찍지 않으며, …그 소리의 기세가 우리 음 상성의 소리와 같으므로 옮겨 적을 때에도 점 둘을 찍는다…
「反譯」(반역)은 뜻이 아니라 말소리를 바꾸어 적는 일이다(강식진 1999: 36). 이 대목의 원리는 3-1과 다르다. 『사성통고』는 성조의 이름에 점을 배당했다. 이 범례는 중국어 소리가 「우리 음 몇 성과 비슷한가」를 들어 점을 정한다. 우리말 방점의 높낮이 값을 빌려 중국어의 실제 높낮이를 근사한 것이다.
인용 가운데 「…」로 빠진 부분에 어느 중국어 성조가 들어 있는지는 강식진이 줄여 옮겼으므로 이 인용만으로는 알 수 없다. 강식진(1999: 42–43)이 범례를 풀어 정리한 대응은 이렇다. 우리 평성은 한어의 상성과 같아 점이 없다. 우리 상성은 한어 전탁 · 불청불탁의 평성(양평)과 같아 점 둘이다. 우리 거성은 한어 전청 · 차청의 평성(음평)과 비슷해 점 하나다. 그렇다면 같은 「상성」이라는 이름의 중국어 성조에 『사성통고』 범례는 점 둘을, 이 범례는 점을 주지 않은 셈이다. 한어 거성에 점을 몇 개 주었는지는 강식진의 글에서 확인되지 않는다(확인 중).
두 번째 대목은 성조가 이어질 때 바뀌는 값을 다룬다.
但連兩字皆上聲而勢難俱依本聲之呼者,則呼上字如平聲濁音之勢,然後呼下字可存本音,故上字二點。若下字爲虛或兩字皆語助,則下字呼爲去聲。
단연양자개상성이세난구의본성지호자, 즉호상자여평성탁음지세, 연후호하자가존본음, 고상자이점. 약하자위허혹양자개어조, 즉하자호위거성.
다만 잇단 두 글자가 모두 상성이어서 둘 다 본래 성조대로 소리 내기 어려운 경우에는, 앞 글자를 평성 탁음의 기세로 소리 낸 뒤에야 뒤 글자가 본래 음을 지킬 수 있다. 그러므로 앞 글자에 점 둘을 찍는다. 뒤 글자가 허사이거나 두 글자가 모두 어조사이면 뒤 글자는 거성으로 소리 낸다.
「평성 탁음의 기세」는 위 대응에서 점 둘을 받는 양평이다. 범례는 앞 글자를 본래 성조인 상성으로 적지 않고 바뀐 뒤의 소리에 맞춰 점 둘을 찍었다. 기저 값이 아니라 실제로 나는 값에 점을 찍는다는 원칙이다. 강식진(1999: 41)은 이것을 현대 중국어에서 3성이 이어지면 앞의 것이 2성으로 바뀌는 변조와 경성을 적은 것으로 보았다. 이 범례가 『번역노걸대』 자체의 범례인지를 다투는 논의도 있다(신용권 2004, 확인 중).
3-3. 『동국정운』 서문 — 조선 한자음에는 치두 · 정치 구별이 없다
『동국정운』(1448)은 조선 한자음을 바로잡으려고 만든 운서다. 신숙주가 쓴 서문은 당시 조선 한자음이 중국 운서와 어디서 어긋나는지 늘어놓은 뒤 이렇게 말한다.
且字母之作, 諧於聲耳。如舌頭舌上、唇重唇輕、齒頭正齒之類, 於我國字音, 未可分辨, 亦當因其自然, 何必泥於三十六字乎?
차자모지작, 해어성이. 여설두설상, 순중순경, 치두정치지류, 어아국자음, 미가분변, 역당인기자연, 하필니어삼십육자호?
또 자모를 만든 것은 소리에 맞추려는 것일 뿐이다. 설두와 설상, 순중과 순경, 치두와 정치 같은 것은 우리나라 한자음에서 가를 수 없으니, 그 자연스러움을 따라야지 어찌 꼭 36자모에 얽매이겠는가.
『동국정운』은 그래서 중국 운학의 36자모를 23자모로 줄였다(이돈주 2002: 34). 치두 · 정치 구별도 순중 · 순경 구별도 조선 한자음에는 두지 않았다. 같은 신숙주가 7년 뒤 『홍무정운역훈』에서는 31자모를 세우고 치두 · 정치 열 자와 순경음 ᄫ ᄬ ᄝ을 썼다(이돈주 2002: 39). 차이는 대상에 있다. 조선 한자음을 적을 때는 구별을 버렸고, 중국 한자음을 적을 때는 구별을 살렸다. 2절의 치두 · 정치 글자가 우리 한자음 교정용이 아니라 중국음 전사용이었다는 것이 이 서문으로 확인된다.
서문의 같은 대목은 끝소리 문제도 지적했다. 1-4의 각주에 옮긴 질 · 물 운의 ㄹ 끝소리다.
4. 『세종실록』 — 「文字及本國俚語」
창제 사실을 처음 적은 기록은 『세종실록』 세종 25년 12월 30일 조의 짧은 기사다.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干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訓民正音。
시월, 상친제언문이십팔자, 기자방고전, 분위초중종성, 합지연후내성자, 범간문자급본국리어, 개가득이서, 자수간요, 전환무궁, 시위훈민정음.
이달에 임금이 몸소 언문 스물여덟 자를 지었다. 그 글자는 옛 전서를 본떴고, 초성 · 중성 · 종성으로 나누어 이를 합한 뒤에야 글자를 이룬다. 무릇 한자와 우리나라 말에 관한 것은 모두 적을 수 있다. 글자는 간단하고 요긴하지만 바꾸어 굴리는 것이 끝이 없다. 이를 훈민정음이라 한다.
적을 수 있다는 대상이 「凡干文字及本國俚語」(범간문자급본국리어: 무릇 한자와 우리나라 말에 관한 것)로 적혀 있다. 여기서 「文字」는 한자, 곧 한자음이다. 우리말과 우리 한자음, 둘이다. 1-4에서 본 해례의 諺 · 文 구분과 같은 짝이다. 외국어는 이 목록에 없다. 정인지 서문의 「바람 소리와 학 울음」보다 세 해 가까이 앞선 이 기사가 대상을 더 좁고 구체적으로 적었다. 「字雖簡要,轉換無窮」은 정인지 서문의 「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과 같은 생각이다.
두 달 뒤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반대 상소를 올렸다. 상소의 여러 논점 가운데 이 면에 닿는 것은 한 문장이다.
又輕改古人已成之韻書, 附會無稽之諺文。
우경개고인이성지운서, 부회무계지언문.
또 옛사람이 이미 만든 운서를 가볍게 고치고, 근거 없는 언문을 갖다 붙였다.
상소가 문제 삼은 쓰임 가운데 하나가 운서, 곧 한자음의 정리였다. 창제 직후 이 글자가 한자음을 바로잡는 일에 쓰이고 있었음을 반대편의 말이 보여 준다.
5. 판본 주석 — 1946 영인과 전사본의 차이
이 면의 해례 인용은 1946년 조선어학회가 간송본을 저본으로 찍은 석판 영인(규장각 소장, 1책 33장)을 기준으로 한다. 영인 사진은 위키미디어 공용에 공개되어 있다. 인터넷에서 흔히 보는 위키문헌 전사본은 해례가 중국어 위키문헌 「訓民正音」 판 2646654, 언해가 한국어 위키문헌 「훈민정음언해」 판 460083이다. 전사본은 편리하지만 영인과 다른 곳이 있다.
| 자리 | 1946 영인 | 위키문헌 전사본 | 비고 |
|---|---|---|---|
| 예의 끝 | 「促急」에서 끝나고 빈칸, 다음 장이 제자해 | 괄호로 「(漢音齒聲有齒頭正齒之別…)」 보충 | 언해본 조항을 편집자가 넣은 것. 해례 원문 아님 |
| 예의 「初彂聲」 | 彂 | 彂 에 가까운 이체 | 실록 세종 28년 9월 29일 기사는 發 |
| 정인지 서 「風聲鶴唳」 | 唳 | 戾 | 실록도 唳 |
| 정인지 서 「雞鳴狗吠」 | 雞 | 鷄 | 실록도 雞 |
| 정인지 서 「莫不該括。以二十八字…」 | 括 뒤에 권점 | 붙여 씀 | 실록도 括 뒤에서 끊음 |
| 언해 치두 · 정치 열 자 | (해례 영인에는 없음) | 열 자 모두 ㅈ ㅊ ㅉ ㅅ ㅆ | 꼴은 역훈 31자모표와 유니코드 이름으로 복원 |
위 표 가운데 영인 사진으로 직접 확인한 것은 예의(ㄱ의 병서 조부터 끝까지)와 제자해 첫머리, 제자해의 전청 · 전탁 대목 앞 절반, 정인지 서의 「象形而字倣古篆」부터 「皆可得而書矣」까지다. 합자해 · 종성해 인용과 정인지 서 앞부분(「蓋外國之語」 대목)은 전사본에 기댔고, 영인 대조는 확인 중이다. 인용 끝에 「영인 대조 확인 중」을 단 것이 그 대목이다.
영인 자체도 원간본과 같다고 단정할 수 없다. 간송본은 발굴 당시 첫 두 장이 없어 뒤에 기워 넣었고, 그 과정에서 세종 서문의 마지막 글자 「耳」가 잘못 쓰이는 등 글자와 권점의 실수가 생겼다(이현희 1997: 241). 예의 앞부분의 글자는 이 보사(補寫)를 거친 것이다.
전사본의 언해 인용에는 편집상의 차이가 하나 더 있다. 이 면은 「之别」을 전사본 글자대로 别로 두었다. 한자 옆의 동국정운식 한자음과 방점은 뺐다. 『세종실록』 인용은 국사편찬위원회 실록 원문을 따랐고, 기사 끝에 권과 날짜를 적었다. 실록 원문은 「唇」처럼 脣의 이체자를 쓰는 곳이 있는데 그대로 두었다.
원문은 모두 공유 저작물이다. 위키문헌의 전사 · 교정은 CC BY-SA 4.0으로 공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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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영인의 예의 면에서 「初聲」 앞 글자는 열일곱 자리 모두 發 의 이체로 찍혀 있다. 윗부분이 癶 이 아니라 业 에 가까운 꼴이다. 유니코드에서 가장 가까운 부호가 彂(U+5F42)이어서 이 면은 彂 으로 적었고, 위키문헌 해례 전사본도 彂 으로 적었다. 획 하나하나까지 같은 부호는 아니다. 『세종실록』 세종 28년 9월 29일 기사에 실린 예의는 같은 자리를 發로 적었다. 판 1은 이 대목을 「如穰字初發聲」으로 인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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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세종 29년 9월 29일 기사에 실린 『동국정운』 서: 「質勿諸韻, 宜以端母爲終聲, 而俗用來母, 其聲徐緩, 不宜入聲」(질물제운, 의이단모위종성, 이속용래모, 기성서완, 불의입성: 질·물 운은 端母 ㄷ을 끝소리로 해야 하는데 세속이 來母 ㄹ을 써서 소리가 느려지니 입성에 맞지 않는다), 「又於質勿諸韻, 以影補來, 因俗歸正」(우어질물제운, 이영보래, 인속귀정: 또 질·물 운에서는 影母 ㆆ으로 來母 ㄹ을 보충하여 세속을 따르면서 바른 데로 돌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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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영인은 「鶴唳」 「雞鳴」이고, 위키문헌 해례 전사본은 「鶴戾」 「鷄鳴」이다. 『세종실록』 세종 28년 9월 29일 기사에 실린 서문도 唳 · 雞다. 영인은 「莫不該括」 뒤에 권점을 찍어 「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을 따로 떼었는데, 전사본은 「莫不該括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으로 붙여 적었다. 실록 기사도 「莫不該括。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으로 끊는다. 한편 실록은 「智者不終朝而會」의 終을 崇으로 적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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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ㆆ과 ㅸ은 유니코드로 ᅙ(U+1159), ᄫ(U+112B)와 같은 글자다. 위 인용은 심소희(2013)가 쓴 호환 자모 꼴을 그대로 옮겼다. ↩